
누구나 기록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주제·특징·지역 등으로 기록물을 정리하여 제공합니다.
경남독립운동소사
작은 이야기, 거대한 울림
『경남독립운동소사』가 전하는 봉인되지 않은 마음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완연한 3월을 맞아, 우리는 107여 년 전 이 땅을 뜨겁게 달구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다시금 마주합니다.
거대한 담론 속에 가려졌던 작은 기록들, 즉 경남독립운동 소사*(小史)는 때로 공식 기록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곤 합니다.

* 『경남독립운동소사』는 일제강점기 경남 지역에서 전개된 3·1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동지들의 활동과 밀서를 기록으로 남긴 변상태 선생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아들 변지섭 선생이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966년에 간행한 책이다.
이번 3.1절 기념 특별전 <봉인되지 않은 마음, 광장에서 읽는 편지>*
「경남독립운동 소사」노트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인물과 드라마틱한 독립운동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았습니다.
* 이번 특별전의 기획의도와 전시구성은 경상남도기록원 홈페이지 > 특별전시 섹션에서 더욱 자세히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시간을 넘어 도착한 수많은 독립운동 증언 편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며, 편지 속 인물들을 현대적인 웹툰 형식으로 되살려 그들의 뜨거운 고백과 의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빛바랜 편지 속에 잠들어 있던 수백 개의 이야기 중, 우리의 마음을 가장 격렬하게 흔드는 두 장면을 먼저 소개합니다.
Ⅰ. 야학으로 맺은 인연, 은혜로 열린 문
1919년 독립운동의 치열한 현장에는 총칼보다 강한‘사람의 마음’이 이념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순사와 범죄자로 마주 선 경남 의령 신반리 독립운동 일화입니다.
과거, 그들은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란 ‘머슴'과 '도련님'이었습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어린 머슴에게 밤마다 몰래 야학(夜學)을 열어 글을 깨우쳐 주고, 신분의 벽을 넘어 인격적인 대우를 아끼지 않았던 도련님. 세월이 흘러 소년은 일본 순사가 되었고, 도련님은 만세를 주도한 독립운동가가 되어 취조실에서 마주 섰습니다.
국가의 엄한 명령과 과거 야학에서 배운 인간의 도리 사이에서 고뇌하던 순사는, 결국 어둠을 틈타 뒷문을 열었습니다.
"도련님, 이 문을 열어둘 터이니 속히 가십시오.“
이 짧은 한마디는 단순한 도주가 아니었습니다.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도 끝내 봉인할 수 없었던 인간적 도리, 사람의 진심이 빚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총칼로도 지울 수 없었던 스승과 제자의 유대, 그 고결한 양심의 빛이 오늘날 우리에게 닿았습니다.

”권희환(權羲煥)은 부림면 세간리 대표(代表)로 신반리 운동의거에 참가하여 활약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령군 경찰서에서 수일간 취조 중에 박삼석(朴三石)이라는 순사가 옥외 변소에 같이 가서 은근히 도망 시켰다. 이유는 예전에 박삼석이 권희환의 집에 머슴으로 있을 때 야학을 하여준 까닭이다. 그 후 권희환은 망명하여 창원군 북면으로 가서 달천사(達天寺)에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
‧ 출처 : 의령군 부림면 신반시장 의거 중에서 (경남독립운동사 노트 1권,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Ⅱ. 검은 잉크의 낙인: 탄압을 넘어선 불굴의 상징
기록 속 1919년의 시위 현장은 처절한 지략의 각축장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경찰은 광장의 군중 속에 섞인 주모자를 선별하기 위해 '잉크 투척'이라는 수단까지 사용했습니다.
시위대의 옷에 지워지지 않는 검은 표식을 남겨 추후 체포의 근거로 삼으려 했던 이 책략은, 오히려 민중의 단결력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잉크가 묻은 저고리를 과감히 벗어 던지거나, 서로의 옷에 묻은 잉크를 닦아주며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일제에게 잉크는 '검거를 위한 표식'이었으나, 우리 민중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광장에서 뿌려진 검은 잉크 자국은 당시의 긴박함과 더불어, 어떠한 물리적 억압도 정신의 고결함을 훼손할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헌병 및 순사 무리 수백 명이 출동하여 그중에 선동자로 인정되는 사람의 의복에는 잉크를 뿌려 두었다가, 석양 때에 검거에 착수하였다."
‧ 출처 : 진주읍 3.1의거 (경남독립운동 소사 노트 1권,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Ⅲ. 맺음말: 봉인을 풀고 우리 곁으로 온 '기록'의 숨결
역사는 단순히 승리자의 전유물도, 박제된 과거의 박편도 아닙니다. 이번 특별전이 주목한 것은 화려한 영웅담 이면에 흐르는 이름 없는 이들의 고뇌와 결단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뒷문을 열어주었던 한 순사의 갈등,
검은 잉크가 튀어 오른 저고리를 입고도 끝내 대오를 유지했던 평범한 이들의 얼굴들. 이 소소한 이야기(小史)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거대한 뿌리를 지탱해 온 진정한 힘이었습니다
이제 웹툰 속 인물들의 강렬한 눈빛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억압의 시대에 누군가의 퇴로를 열어주었던 그 따뜻한 용기가, 오늘날 우리의 마음 속에도 숨 쉬고 있는지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남긴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볼 때, 그 속에서 독립의 함성만큼이나 뜨거웠던 사람의 향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3월의 기록 속에서,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도착한 이 '봉인되지 않은 마음'을 우리의 광장에서 직접 만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