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기록이야기 _ 전사통지서, 국가가 남긴 마지막 소식

작성일
2026-06-05 17:38:50
작성자
경상남도기록원
조회수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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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기록이야기

전사통지서, 국가가 남긴 마지막 소식

 

전쟁은 기록을 남기는 일이 절실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전선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행정체계는 흔들리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국가 활동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기록을 남긴다.

병력의 이동과 보급, 전투의 수행, 인원의 관리 과정에서 다양한 기록들이 생산되었다.

그 가운데 전쟁을 가장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기록이 있다

바로 전사통지서이다.

(전사통보서, 양산군 ,1951,경상남도기록원 소장)

 

전사통지서는 군인이 전사하였음을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다.

국가의 행정 절차에 따라 생산된 기록이지만, 그것이 전달되는 순간에는 단순한 행정문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에게는 아들의 소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남편의 소식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실종자통지서, 함양군 병곡면, 1953,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한국전쟁 시기 생산된 전사통지서는 전시 행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을 담고 있다.

같은 목적을 가진 문서임에도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공문서는 비교적 통일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전사통지서에는 그러한 획일성이 보이지 않는다.

관공서 공문 형태의 문서가 있는가 하면,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이나 편지와 유사한 형식의 문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차이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표준화된 행정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전사 사실을 확인하고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과정 역시 부대와 기관의 여건에 따라 이루어졌다.

특히 편지 형식으로 작성된 전사통지서는 눈길을 끈다.

전사통지서는 기본적으로 행정문서이지만, 일부 문서에는 애도와 위로의 표현이 담겨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장병에 대한 경의와 유가족에 대한 위로를 전하려는 문구들이 문서 곳곳에서 확인된다.

전사 사실을 알리는 내용 자체는 비통하지만, 그 문장들 속에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당시의 인식 또한 담겨 있다.


[故 최영화 님의 전사통지서 ,군인전사명부, 하동군,화개면, 1958,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유가족에게 삼가올리나이다

우리 민족국가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귀중한 자제를 성전의 마당에 보내시고 후의 역사로서 향토발전에 기여하시는 유가족 여러분들은 그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존체의 건강과 아울러 가업의 흥왕을 기원하여 마지 않읍니다.

민족국가의 영원한 보위를 위하여 조국통일의 성전에서 용전부투하던 귀 자제 최영화 군은 입대 이래 적군과 진실로 자기 본분을 인식하고 군인으로서의 최대 영예인 적과 대치하고 총검으로서 승부를 결하는 마당에서 지종여일하게 멸공전투를 연속하다가 애석하게도 구국수호신으로 산화 하였음은 유가족 여러분과 더부러 통분지정을 불금하는 바입니다.

고귀한 영현(유골)의 인수절차를 미지하여 상금 인수하지 못한 유가족께서는 각 병사구사령부 원호과 유가족 상담소에 개전이래 4286.3.31.까지의 전사자 총명부를 배포하였으니 직접 병구사령부에 왕림 문의 하시어 하기에 의거 직접 인수하여 주심을 바라오며 미필이오나 내내 건승하시와 조국통일독립을 쟁취하는 민족성업에 일로 매진하심을 축복하옵니다.

 

(故 양재복 님의 전사통지서, 전사통지서록, 함양군 병곡면, 1953,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근계 추냉지절에 유가족제위존체만안 하심을 앙계단시 하나이다.

고 양재복 군이 조국방위의 초석으로서 산화하신 이후 애통과 원한을 싸도라 비애하신 마음이야 얼마나 하시며 더구나 고등한 물가와 복잡다단한 일상생활에 애로는 얼마나 막심하시겠습니까.

추찰하고도 남음이 없읍니다.

이 곳 부대장은 부하장병과 같이 멸적필승의 과업에 적구히 매진하고 있으며 인자명예호자피의 격언에 따라 고 양재복군의 전공과 부대전사에 빛나는 군의 이름을 회자하고 마지않음니다.

민족적 반대의 함성을 물리치고 성립된 휴전협정은 다시금 조국을 분단하였으면 군관민의 격분을 초래하였음니다.

그러나 유구한 민족의 절개를 지키고 황폐화된 문화를 부흥케 하며 남루한 모습으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고경의 겨레를 보호함은 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우리 국군의 사명임을 통감하는 바임니다.

우국의 혈루 어리는 이 강산을 우리의 손으로 또 거룩한 순국선열의 뜻을 이어받아 서광이 빚이는 평화의 그날을 이루고 말 것 맹세하나이다.

애통의 그 순간 원한의 그날을 잊어시고 미래의 희망과 행복을 찾아서 민족의 앞날을 축복 하시면서 현실의 고통과 비관을 일소하시와 건봉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일기는 점차 한냉의 도 가해지는 이때 옥체 더욱 건강하심을 기원하면서 난필조구로서 위로의 뜻을 올리나이다.

단기 42861031

육군제 7538부대

부대장 육군대령 김 인 철 재배

 

이 때문에 전사통지서는 건조한 행정문서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의 희생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기록인 동시에, 남겨진 가족에게 전달된 마지막 소식이기도 하다.

문서에 적힌 이름과 날짜, 짧은 문장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품고 있다.

 

전사통지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정부는 전몰군경 유족에 대한 지원과 원호 정책을 추진하였고, 당시 원호국과 원호처는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전사통지서는 유족 등록과 보상, 각종 원호 업무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국가보훈부로 이어지는 보훈행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실제로 일부 기록에서는 원본과 함께 사본이 남아 있는 사례도 확인된다.

이는 유족들이 보상과 지원을 받기 위한 행정 절차 과정에서 해당 문서를 반복적으로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

전사통지서가 단순히 한 번 전달되고 사라지는 문서가 아니라, 전쟁 이후에도 오랫동안 개인과 국가를 연결하는 기록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전사통지서철, 합천군 적중면, 1980, 경상남도기록원 소장)
 

이번에 공개되는 전사통지서는 개인이 보관해 온 유품이나 가족 기록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가 전사자의 희생을 확인하고 군인사망급여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생산·수집한 행정기록물이다.

특히 공공기록물로 보존되어 온 전사통지서와 관련 행정문서가 함께 공개되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전사통지서는 유가족이 간직해 온 개인 소장 자료를 통해 일부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기록들은 전사통지서뿐 아니라 급여금 지급을 위한 행정문서, 유가족 확인 공문, 주소 조회 문서 등이 함께 남아 있어 당시 국가의 보상 행정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관련 기록들 가운데에는 아직 급여금을 신청하지 않은 유가족을 찾기 위해 관계기관이 직접 주소를 조회하거나 소재를 확인하는 공문들도 다수 남아 있다.

 
 

이는 단순히 신청을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사자 유가족에게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행정 업무를 수행하였음을 보여준다.

전사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유가족의 거주지와 신원을 확인하고 지급 절차를 안내하는 과정은 전쟁의 희생에 대한 국가적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공개되는 전사통지서 기록은 단순히 전사 사실을 알리는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희생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유가족을 찾아 예우와 보상을 이어가고자 했던 행정의 증거이자 역사적 기록이다.

전쟁의 기억을 개인의 슬픔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국가 기록의 관점에서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