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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뚫고 나간 말을 찾았습니다.
기록을 뚫고 나간 말을 찾았습니다.
-말이 잠든 자리, 말이 남긴 이야기-
올해 초 기록원은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를 맞아 도민들께 작은 부탁을 드렸습니다.
"기록을 뚫고 나간 말을 찾습니다.“
오래된 지명 속에, 마을 어른들의 구전 속에, 누군가의 서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말' 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기록문화 이벤트였습니다.

크고 화려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그 작은 부탁에 도민들은 저마다 품고 있던 기억을 꺼내어 보내주었습니다.
진주에서, 합천에서, 그리고 거창에서.
그렇게 우리는 기록 속에 잠들어 있던 말들을 만났습니다.
오래된 지명으로 남은 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말,
그리고 지금도 전설처럼 이어지는 말의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 지금,
그 때 도착한 이야기들을 다시 펼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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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보다 빨랐던 말
거제에서 난을 피해 온 유형귀(劉亨貴) 장군에게는 무엇보다 아끼던 말 한 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장에서 화살이 날아오자 장군은 말을 재촉해 달렸습니다.
하지만 순간, 말이 화살보다 늦다고 생각한 장군은 다급한 마음에 자신의 말을 베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뒤늦게 날아온 화살이 말이 쓰러진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그제야 장군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달렸던 말은 결코 느렸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성급함과 잘못을 깨달은 장군은 깊이 뉘우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날의 이야기는 ‘살목(矢項)’* 이라는 지명으로 남았고, 무덤실마을 어딘가에는 장군의 충직했던 애마가 잠들어 있다는 전설도 함께 이어지고 있습니다.
* 살목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 사람의 후회는 시간이 지나 사라졌지만, 그 마음과 기억은 땅의 이름이 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가조면지」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정시균(경남거창군) 님이 제보해 주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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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려 마음을 낮추다
합천군 대병면 하금리에는 오래 전부터 한 비석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마비(下馬碑)입니다.
하마비에는 보통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라는 글귀가 새겨졌다고 합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
말 위에서는 누구나 높은 위치에 있지만, 그 앞에서는 모두 말에서 내려 같은 땅을 밟아야 했습니다. 말에서 내리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존경하는 대상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의 표현이었습니다.
하금리 산 45-3번지 일대는 은진 송씨 문중의 중요한 인물인 야은(野隱) 송시영(宋時榮, 1588~1637) 선생의 후손들이 살아온 지역으로 전해집니다.
송시영 선생은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충신이며, 우암 송시열과도 인연이 있는 인물입니다. 은진 송씨 문중에서는 그의 충절을 높이 기리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하마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송시영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라는 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확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장소를 기억하며 이야기를 이어왔습니다.
하마비는 말에게서 내려오는 순간을 기록한 흔적입니다.
말은 사람을 태우고 길을 열었지만, 어떤 자리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에서 내려 걸으며 마음을 낮추게 했습니다.
그 작은 행동 속에는 존경과 겸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재현이미지)
* 이 이야기는 경남 합천 송종부 님께서 들려주신 지역의 구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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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를 달린 발자국
거창 가조면 대학동 수포대(水瀑臺)에는 또 다른 말 한 필이 살고 있습니다.
한 번 도약하면 천 리를 달린다는 천리마가 이 바위를 딛고 지나갔고, 그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음도, 이별도, 회한도 없습니다.
그저 더 먼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내달렸다는 전설 하나.
아마 사람들은 삶이 고단할수록 언젠가는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천리마에 담아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수포대의 말은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달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출처: 디지털거창문화대전)
* 이 이야기는 정시균(경남 거창) 님께서 제보해 주신 내용으로, 거창군 가조면 대학동 대학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져 온 구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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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머무는 곳, 기록이 이어지는 곳
이번 이벤트에는 거창문화원부설 거창학연구소 정시균 선생의 「말(馬)을 찾다」를 비롯해 「진주 말티고개」, 「합천군 대병면 하마비 관련」 등 소중한 자료들이 함께 도착했습니다.
「말(馬)을 찾다」에는 모두 서른네 건의 말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진주 말티고개」는 조선 전기 영남대로에 스며 있는 전란의 기억을, 「합천군 대병면 하마비 관련」은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말에서 내리게 했던 하마비의 의미를 전해주었습니다.
말은 사람을 태우고 길을 열었습니다.
때로는 짐을 나르고, 전장을 함께 누볐으며, 어떤 말은 주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말고개, 말무덤, 말바위, 살목.
기록원은 바로 이런 이름들이 왜 생겨났는지, 누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는지를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이어갑니다.
병오년, 도민들이 찾아준 이야기는 흩어져 있던 지역의 기억을 다시 기록의 자리로 불러냈습니다.
오래도록 땅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기록을 뚫고 나온 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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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힘차게
우리가 만났던 말들은 화살보다 빨랐고,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였으며, 천 리를 향해 쉼 없이 달렸습니다.
모습은 달랐지만 어느 말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만난 지금, 우리도 어느새 병오년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때로는 더디게 걸었고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기록을 남기고 이야기를 모으는 걸음은 이어졌습니다.
병오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잠시 늦더라도 다시 달릴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도민들이 건네준 이야기 속 말들은 오늘도 기록 속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그 걸음을 기억하며, 우리도 남은 시간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