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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10월 기록 이야기
한글을 만든 기록, 기록을 지킨 사람들
― 훈민정음 해례본과 간송본·상주본 이야기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 행사, 국정홍보처, 1990, 국가기록원 소장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문자를 만든 원리와 목적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가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르는 책은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이다.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취지와 원리를 설명하고, 새 문자를 실제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기록이다. 세종의 서문과 ‘예의(例義)’, 정인지의 서문과 집현전 학자들이 풀이한 ‘해례(解例)’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훈민정음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원리에 따라 사용되는 문자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단순한 문자 해설서가 아니다. 한 문자의 탄생 과정과 원리, 사용 방법을 함께 기록한 자료이자 조선시대의 문자·언어·지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유산이다.
세계가 주목한 기록,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정은 인류의 기억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유산을 선정하고, 이를 보존·활용하기 위한 제도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자를 창제한 원리와 그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미지 출처 : 간송미술관
한글의 가치는 기록유산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네스코는 1989년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으로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했다. 이 상은 문해 증진에 기여한 기관이나 단체의 활동을 기리는 상으로, 특히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문해 발전에 주목한다.
문자를 만들고 그 원리를 기록으로 남긴 한글의 역사가 오늘날에는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읽고 쓰며 지식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해의 가치와도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한글은 하나의 문자를 넘어,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록과 소통의 기반이 되어 왔다.
01. 500년 넘게 모습을 감췄던 기록, 다시 세상에 나오다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담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었지만, 이후 오랫동안 그 실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훈민정음이 널리 사용되었지만, 한문 중심의 지식문화 속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례본의 존재와 전승 경로도 점차 희미해졌다.
그러던 중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었다. 당시 발견된 책에는 세종의 서문과 훈민정음의 원리를 설명한 ‘예의’, 그리고 정인지와 집현전 학자들이 작성한 ‘해례’가 온전히 실려 있었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책 한 권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다.
훈민정음은 오늘날 누구나 사용하는 문자이지만, 그 문자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당대의 설명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해례본에는 자음과 모음이 어떤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는지, 음절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실제로 문자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02. 간송 전형필, 한 권의 책에 담긴 가치를 알아보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힘쓴 인물이다. 그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접했을 때 주목한 것은 단순히 책의 오래된 연대만이 아니었다. 이 책은 우리 문자의 탄생을 설명하는 당대의 기록이었다.

(이미지 출처 : 국가유산채널 영상 _훈민정음을 지킨 간송 전형필)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원리로 문자를 만들었는지, 각각의 글자가 무엇을 본떠 만들어졌는지, 새 문자를 왜 만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기록은 쉽게 만날 수 없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바로 그 질문에 답을 담고 있었다.
간송은 이러한 기록의 가치를 알아보고 해례본을 소중히 보존했다. 이후 이 기록은 오늘날 국보로 지정되어 우리 문화유산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간송의 역할을 단순히 ‘문화재를 수집한 사람’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가 지켜낸 것은 오래된 종이와 책장이 아니라 한글이라는 문자에 담긴 창제의 원리와 생각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였다.
기록은 만들어지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알아보고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기록은 한 번 사라지고 나면 같은 모습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원본 기록이 남아 있어야 후대의 연구자들이 내용을 확인하고, 다른 기록과 비교하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송이 해례본을 보존한 일은 단순한 개인의 소장에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기록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낸 선택이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한글의 탄생을 직접 보여주는 기록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간송본은 그래서 ‘훈민정음이라는 위대한 문자의 기록’인 동시에, 한 시대의 기록을 다음 세대에 전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03. 또 하나의 해례본, 상주본이 세상에 알려지다
2008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알려졌다. 간송본이 발견된 지 68년 만의 일이었다.
상주본이 주목받은 것은 단순히 ‘해례본이 한 권 더 발견되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발견된 간송본을 중심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2008년 또 하나의 실물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애초에 몇 권이나 만들어졌을까.
그 많은 책은 이후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두 권은 어떤 경로를 거쳐 서로 다른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을까.
상주본이 던진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권의 기록만 놓고 보면 알기 어려웠던 ‘기록의 행방’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상주본의 이야기는 기쁨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공개 직후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시작되었고, 민사소송에서 소유권이 조 모 씨에게 있다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후 조 모 씨가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법적 소유권은 국가에 있게 되었지만, 실물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었다.
2015년에는 상주본을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상주본 일부가 훼손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 일부(왼쪽)와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 복사본(오른쪽) _ 출처 : 국가유산청
이처럼 상주본은 또 하나의 해례본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귀중한 기록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도 그 소유와 보존, 관리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상주본은 바로 그 ‘기록의 내용’에서 ‘기록의 생애’로 시선을 돌리게 한 기록이었다.
04. 한글날, 두 해례본이 보여주는 기록의 시간
간송본과 상주본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의 시간을 보여준다.
간송본은 한 사람이 기록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낸 과정을 보여준다. 기록을 발견하고 보존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기록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상주본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록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확장한 과정을 보여준다.
두 기록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기록의 속성이 있다. 기록은 만들어지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보존되고 발견되고 읽히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1446년에 만들어진 훈민정음 해례본은 당시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문자의 원리와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이 기록은 조선시대의 문자와 지식,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가 되었고, 세계가 함께 보존해야 할 기록유산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기록의 가치는 기록이 만들어진 순간에 모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질문을 만나며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10월 9일 한글날, 1446년의 기록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