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기록이야기_ 늦가을, 바다에 남겨진 기록,『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작성일
2026-11-06 10:50:17
작성자
경상남도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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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해이어보

우해이어보

경상남도기록원 11월 기록이야기

 

늦가을, 바다에 남겨진 기록,『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담정집(미디어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늦가을 바다에 남겨진 기록, 『우해이어보』

11월은 한 해를 차분히 돌아보고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늦가을의 바다는 한층 깊은 빛을 띠고, 포구와 어촌에는 한 해의 생업을 정리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번 기록이야기에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소개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이 바로 늦가을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문인 담정(藫庭) 김려(金鑢)는 책머리에 실린 「자서(自序)」에서 진해에 유배된 지 2년여가 지난 1803년 늦가을, 이 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200여 년 전 같은 계절, 한 사람은 경남의 바다를 살피고 그곳에서 만난 생물과 사람들의 삶을 글로 남겼다. 한 해의 끝자락에 그가 남긴 기록을 다시 펼쳐 보며, 오래전 경남의 바다와 그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려 한다.

 

『우해이어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서 저술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물고기의 이름과 생김새를 정리한 책이 아니다. 옛 진해현 바다에 살던 다양한 생물의 모습과 습성, 어획 방법과 이용 방식, 수산물의 유통, 어촌 사람들의 생활과 풍속까지 폭넓게 담고 있다.

우해이어보(미디어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 후기 남해안의 해양생태와 어촌생활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변화하는 경남의 바다와 사라져가는 어촌의 생활문화를 기록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1. 유배지에서 만난 바다, 기록이 되다

김려의 삶에서 『우해이어보』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유배 생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려는 1797년 강이천의 비어사건에 연루되어 부령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 과정에서 사건이 다시 조사되고, 천주교도와 교분을 맺었다는 혐의를 받아 경남의 옛 진해현으로 옮겨졌다.

 

신유사옥(辛酉邪獄)은 순조 즉위 초 천주교 관련 인물들을 대상으로 전개된 대규모 정치적 탄압이었다. 김려는 1801년부터 1806년 방면될 때까지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연구에 따르면 그는 유배 초기 진전면 율티리에 머물렀고, 이후 진동리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율티리와 진동면 진동리, 진북면 인곡리 일대가 그의 유배 생활과 관련된 공간이다.

당시의 진해현은 오늘날의 창원시 진해구와는 다른 행정구역으로, 『우해이어보』의 주요 무대는 지금의 삼진지역과 진동만 연안이다.

 

낯선 땅에서의 유배 생활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려는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와 어패류를 살피고, 어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오랫동안 쌓아 온 바다의 지식과 경험을 접했다.

그렇게 바다를 관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시간이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 유배라는 개인적인 삶의 경험이 지역의 자연과 생활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2. 물고기 이름부터 생김새와 쓰임까지, 바다를 기록하다

『우해이어보』라는 제목에도 책의 성격이 담겨 있다.

‘우해(牛海)'는 당시 진해현 일대의 바다를, ‘이어(異魚)'는 흔히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물고기를, ‘보(譜)'는 대상의 종류와 특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을 뜻한다. 말 그대로 우해의 바다에서 만난 다양한 수산생물을 정리한 책이다.

 

책에는 어류와 연체동물 53종, 갑각류 8종, 패류 10여 종 등 70종 안팎의 수산생물이 등장한다. 생물의 이름과 생김새, 움직임과 습성, 맛을 설명하고, 어획 방법이나 이용 방식, 유통에 관한 내용도 함께 담았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학명이나 생물분류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김려는 눈으로 관찰한 생김새와 행동, 살아가는 환경, 맛과 쓰임 등을 바탕으로 생물들을 구별하고 설명했다. 오늘날의 과학적 분류와는 차이가 있지만,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특징을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자연관찰과 지식 축적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생물의 이름을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김려는 한글 대신 한문차자와 새롭게 만든 글자를 활용해 지역에서 사용하던 생물 명칭을 기록했다. 오늘날의 표준 생물명과 다른 표현 속에는 당시 주민들이 바다 생물을 어떻게 구별하고 불렀는지, 자연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했는지가 담겨 있다. 2024년 발표된 국자(國字) 연구에서도 이러한 표기 방식이 주목받았다. 『우해이어보』는 바다 생물에 관한 책인 동시에 조선 후기의 언어생활과 지역의 지식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기도 하다.

 

3. 바다에서 포구로, 어촌의 생업과 생활을 담다

바다는 어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매일 살펴야 하는 생활의 공간이었다.

물때와 조류, 계절에 따른 어종의 이동을 알아야 했고,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고기를 잡을지도 경험을 통해 익혀야 했다.

 

『우해이어보』에는 이러한 어촌의 생활지식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물고기를 잡는 어구와 어획 방법, 그물을 만드는 방식뿐 아니라 잡은 수산물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디에 판매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정어리가 많이 잡히면 현지 주민들은 이를 모두 소비하지 않고 함안·영산·칠원 등 어류가 귀한 인근 내륙지역으로 내다 팔았다는 기록이 눈길을 끈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가 포구를 거쳐 내륙의 시장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진동만 일대의 어업이 주변 지역의 생활경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동만의 포구와 섬, 갯벌, 염전 역시 당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공간이었다. 바다에서 수산물을 얻고, 소금을 생산하고, 이를 가공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유통하는 일은 어촌경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처럼 『우해이어보』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만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산활동과 생활기술, 지역 간 교역과 음식문화까지 함께 보여준다. 한 권의 책을 통해 200여 년 전 경남 남해안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이유다.

 

4. 시 속에 남겨진 어촌의 풍경, 「우산잡곡」

『우해이어보』의 또 다른 매력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한시 「우산잡곡(牛山雜曲)」이다.

칠언절구 형식으로 쓰인 이 시에는 진동만 일대의 어촌 풍경과 어로 현장,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정 지역의 생활과 풍속을 시로 표현한 기속시(紀俗詩)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책에 수록된 산문과 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당시의 바다를 보여준다.

산문이 물고기의 생김새와 습성, 어획과 이용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시는 어촌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 그곳을 바라보는 김려의 정서를 전한다.

덕분에 독자는 단순히 어떤 물고기가 살았는지를 넘어 당시 진동만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삶까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우산잡곡」은 『우해이어보』의 부록 정도로만 볼 자료가 아니다.

조선 후기 창원지역의 어촌생활과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독립적인 문학·역사자료로도 의미가 있다.

 

5. 옛 지명을 따라가며 되살리는 경남의 바다

『우해이어보』를 읽다 보면 고저암, 청송 염전, 양도, 주도, 실음포, 연미정, 목면호 등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지명들이 등장한다.

이 지명들은 단순한 장소의 이름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이 어디에서 고기를 잡고 소금을 만들었는지, 어떤 포구를 오가며 생활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한정호의 2024년 연구 「김려의 창원 유배지도」는 『우해이어보』에 등장하는 지명을 김려의 실제 유배 생활 공간과 연결해 살펴본 연구다.

문헌 속 장소를 현재의 지리적 공간과 연결하면서 당시 창원의 지역적 특성과 장소성을 새롭게 조명했다.

옛 지명을 오늘날의 지도와 옛 지형, 행정구역의 변화와 함께 살펴보면 200여 년 전 경남 해안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포구와 염전에서는 생산활동을, 섬과 갯벌에서는 당시의 해양환경과 어업활동을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오래된 문헌에 남겨진 지명은 사라진 장소와 생활의 흔적을 찾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우해이어보』는 창원지역의 해양문화와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다.

 

6. 한 사람의 기록이 지역의 역사가 되기까지

기록의 관점에서 『우해이어보』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 책이 처음부터 공공의 역사자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김려는 유배지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다의 생물과 어민들의 생활을 기록했다. 행정업무를 위해 작성한 문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공식 자료도 아니었다. 한 개인의 관심과 관찰에서 시작된 저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책은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되었다.

해양생태와 수산사, 지역사, 문학사, 언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자료로 활용되며 조선 후기 경남의 바다와 어촌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자료가 되었다.

물론 책에 담긴 내용이 당시 어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김려라는 한 지식인의 시선과 이해를 거쳐 정리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록을 읽을 때에는 기록자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설명했는지 살펴보고, 다른 문헌과 지역 연구자료를 함께 비교해 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지역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지역의 역사는 행정기관이 생산한 문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개인과 가족이 간직해 온 사진과 편지, 마을의 생활자료, 어업 장부와 구술기록에도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흔적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료가 한 지역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는 귀중한 기록이 될 수 있다.

 

7. 늦가을, 다시 경남의 바다를 기록하다

 

200여 년이 흐른 지금 진동만의 해안과 어업환경, 수산물의 생산과 유통 방식, 어촌의 생활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면 오늘날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옛 바다의 모습과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과정도 의미가 깊다.

 

김려가 유배 중 쓴 저술 대부분은 남의 손에 넘어갔지만, 『우해이어보』는 광주리에 숨겨 두었다가 조카 김학연이 정서하여 후대에 전했다고 한다.

한 개인이 남긴 기록이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보존되고 전해졌기에 오늘날 우리는 200여 년 전 경남의 바다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기록의 가치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질문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가 드러나기도 한다.

 

오늘날 경남의 어촌에서 쓰이는 어업 장부와 마을 회의록, 개인과 가족이 간직한 오래된 사진과 생활자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평범해 보이는 자료들이 훗날 경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다.

 

11월, 한 해를 갈무리하는 늦가을에 『우해이어보』를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여 년 전 김려가 경남의 바다를 관찰하고 기록했듯,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의 모습도 소중히 살피고 남겨야 한다.

오래된 기록 속에서 경남의 바다를 만나고, 오늘의 일상에서 내일의 경남을 기록한다.

이미지 출처 : 경남매일 (2026.10.26.보도기사)

  『우해이어보』의 역사적 가치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을의 역사와 해양문화를 체험하는 축제가 열리는 등 지역의 문화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

- 김려(金鑢),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1803.

- 한정호, 「김려(金鑢)의 『우산잡곡(牛山雜曲)』 연구」, 『영주어문』 제35집, 2017.

- 한정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속에 나타난 조선후기 마산(馬山)의 해양문화 고찰」, 『영주어문』 제42집, 2019.

- 한정호, 「김려(金鑢)의 창원 유배지도 - 『우해이어보』에 들앉은 유배지 창원의 장소성 고찰」, 『탐라문화』 제76호, 2024.

- 김우정, 「『우해이어보』 소재 국자(國字) 고(攷)」, 『해양유산』 제6권 제1호, 2024.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해이어보」·「김려」 항목.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문화사』 관련 자료.

- 창원시, 『창원시 문화자원 조사자료』, 「우해이어보」.